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의 성씨 (문단 편집) == 일본 성씨의 역사 == 고대에는 부계 혈통을 중심으로 씨족(氏族)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 부족의 출신을 의미하는 '[[우지(성씨)|우지]]'([ruby(氏,ruby=うじ)][* 씨. '씨족'이라는 의미로 이 한자를 쓸 때는 [ruby(藤,ruby=ふじ)][ruby(原,ruby=わら)][ruby(氏,ruby=うじ)], [ruby(長谷,ruby=はせ)][ruby(部,ruby=べ)][ruby(氏,ruby=うじ)]처럼 '[[우지(성씨)|우지]]'(うじ)라고 읽는다.])가 쓰였는데, [[야마토]] 왕권(야마토 조정)이 들어서면서 특정 씨족은 조정의 주요 간부로 등용되었고 그 입지를 더욱 굳혀나갔다. 나중에는 천황이 조정에 등용하는 인재에게 [[우지(성씨)|우지]]를 부여하기도 했는데 이에 해당하는 것이 [[미나모토]]([ruby(源,ruby=みなもと)]), [[다이라]]([ruby(平,ruby=たいら)]), [[후지와라]]([ruby(藤,ruby=ふじ)][ruby(原,ruby=わら)]), [[타치바나]]([ruby(橘,ruby=たちばな)])[* 이들 4개의 씨족은 당시에 유력한 혈족 집단이었기 때문에 흔히 각 앞글자 한 글자씩을 따서 [[겐페이토키츠]](源平藤橘)라고도 불린다.], [[도요토미]]([ruby(豊,ruby=とよ)][ruby(臣,ruby=とみ)]) 등이다.[* 특히 [[후지와라]](藤原)는 과거에 일부 분파가 멸망하였고 살아남은 본가도 분열되어서 [[고셋케]](오섭가; [[고노에]](近衛), [[구조(성씨)|구조]](九条), [[니조]](二条), [[이치조]](一条), [[다카쓰카사]](鷹司)이다)로 가문명을 사용하고 있는 후지와라로, 현대의 보통 후지와라와는 다르다.] 특히, 천황이 우지를 하사할 때에는 천황과의 관계나 정치적 지위에 따른 별도의 호칭[* 즉, [[작위]]와 [[관직]]을 모두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을 따로 부여했는데 이것이 바로 '가바네'([ruby(姓,ruby=かばね)][* 성. 역시 씨족과 관련된 용어로 쓰일 때에는 かばね라고 읽는다. 참고로 오늘날 이 한자는 しょう, せい라는 음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우지, 가바네는 보통 조정의 자리에서나 쓰이는 호칭이었고[* [[에도 시대]] 말기 정도까지 이어졌다.], 이를테면 미나모토 씨족은 아손([ruby(朝臣,ruby=あそん)])이라는 가바네를 받았는데, 이에 따라 미나모토를 받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공문서에 '미나모토노 아손 이에야스'([ruby(源,ruby=みなもとノ)][ruby(朝臣,ruby=あそん)][ruby(家,ruby=いえ)][ruby(康,ruby=やす)])로 나온다. [[우지(성씨)|우지]]를 이름에 쓴 경우 '그 혈족 출신의'라는 것을 밝혔기 때문에 [[우지(성씨)|우지]]와 본명 사이에 노(の)를 붙여서 읽었다. 즉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義経]]가 '미나모토 요시츠네'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반영해서 후리가나를 달 때 の를 [[우지(성씨)|우지]]에 끼워넣는 표기를 종종 볼 수 있다. 즉 [ruby(源,ruby=みなもとの)][ruby(義,ruby=よし)][ruby(経,ruby=つね)]와 같이 적는 식이다. [[http://www.book-seishindo.jp/bunken2014/kyotu_2014A-05.pdf|#]][[https://www.ia-ibaraki.or.jp/kokusai/portugal/japanese/material/pdf/10.pdf|#]] の가 실제론 한자의 발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ruby(源,ruby=みなもとノ)][ruby(義,ruby=よし)][ruby(経,ruby=つね)]처럼 가타가나로 다는 경우도 있다.] 가문의 구성원이 많아지고 이렇게 천황이 [[우지(성씨)|우지]], 가바네를 하사하다보니 실제 혈족이 아니면서 같은 혈족으로 편입이 된 인물이 늘어나게 되자 [[우지(성씨)|우지]]를 이름에 쓰는 것이 사실상 무의미해졌고, [[헤이안 시대]]에 귀족이나 무사들은 [[우지(성씨)|우지]]와는 별개로 가족 집단을 나타내기 위해 묘지([ruby(苗,ruby=みょう)][ruby(字,ruby=じ)][* [ruby(名,ruby=みょう)][ruby(字,ruby=じ)]라고도 쓴다.])라는 것을 만들어서 [[우지(성씨)|우지]] 대신 썼는데, [[도쿠가와]]가 바로 [[이에야스]]가 창시한 묘지다. 다른 예로는 후지와라 가문이 [[고셋케]](오섭가)로 분열됐을 때 [[우지(성씨)|우지]] 대신 묘지를 일상생활의 성씨로 쓴 경우가 있다. 묘지는 천황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고 혈족의 이름도 아니기 때문에 노(の)를 붙이지 않고 그냥 읽는다. 가바네는 사실상 [[우지(성씨)|우지]]랑 같은 것으로 취급됐고 지위나 관직을 나타내는 역할 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생활에서는 묘지와 본명만을 사용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게다가 [[우지(성씨)|우지]], 가바네, 묘지 말고도 [[아호|호]]와 비슷한 개념인 별명(字; 아자나)[* 동아시아의 [[자(이름)|자]]의 개념과 유래와 용도 등의 면에서 같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격식을 갖춰 예우하는 용도의 이름이며, 일상 생활에서는 본명을 사용하였다.]도 있었다. 본명은 가족, 친구 등 친한 관계에서 사용하고, 그 외 공식적이거나 예우하는 자리에서는 이 별명(아자나)을 사용하였다. 앞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경우 별명이 지로사부로([ruby(次,ruby=じ)][ruby(郎,ruby=ろう)][ruby(三,ruby=さぶ)][ruby(郎,ruby=ろう)])이고 지금까지 나온 사항을 모두 적용해서 풀네임으로 쓰면 [[이름이 긴 캐릭터|'미나모토노 아손 도쿠가와 지로사부로 이에야스'(源朝臣徳川次郎三郎家康) 또는 '도쿠가와 지로사부로 미나모토노 아손 이에야스'(徳川次郎三郎源朝臣家康)]](...)가 된다.[* 마찬가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경우, 관백 취임을 위해 [[고노에 사키히사]]의 양자로 들어갔을 때에는 후지와라노 아손 하시바 토키치로 히데요시(藤原朝臣羽柴藤吉郎秀吉)가 되었고, 이후 도요토미라는 우지를 하사받은 후에는 도요토미노 아손 하시바 토키치로 히데요시(豊臣朝臣羽柴藤吉郎秀吉)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히데요시는 1572년 키노시타에서 하시바로 묘지를 바꾼 후 평생 하시바라는 묘지를 사용했고, 신분이 높아져서 묘지를 쓸 일이 없었을 뿐이지, 묘지를 하시바에서 도요토미로 바꾼 것이 아니다. 즉, 이에야스나 기타 다른 다이묘들처럼 '묘지 + 이름'으로 부를 경우, 히데요시는 도요토미라는 우지를 받은 후에도 하시바 히데요시라고 불러야 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미나모토 이에야스라고 부르고 [[우에스기 겐신]]을 후지와라 겐신이라고 부르는 식의 특이한 호칭이 사실상 공식화된 예외적인 케이스이다.][* 한자 문화권 국가 중에 중국이나 한국이 이름을 짧게 짓는 편이고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이렇게 이름이 긴 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중동은 본인 이름 + 아버지 이름 + 할아버지 이름 + 가문명 식으로 이름을 짓고 스페인, 포르투갈식 작명법도 굉장히 길기로 유명하다. 예시로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본명도 '프란시스코 파울리노 에르메네힐도 테오둘로 프랑코 이 바아몬데 살가도 파르도 데안드라데' 이다(...).] 이렇게 성명 체계가 지나치게 길어지자 [[메이지 시대]] 때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져서, [[우지(성씨)|우지]] = 가바네 = 묘지로 일원화하는 오늘날의 성명 체계가 자리잡았다. 현대의 일본 민법에서는 성씨를 씨([ruby(氏,ruby=し)])로 쓰고 있으며,[* 이 때문에 공문서의 성명 표기란은 '씨명'(氏名)으로 되어 있다.] 일상적으로는 묘지(苗字/名字)로 칭한다. 묘지(名字)의 등장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붙이자면, 묘지는 당초 [[헤이안 시대]] 말기에 귀족들과 [[공가]]들이 집안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들의 저택의 교토 내 지명을 붙여 사용한 것을[* [[구조(성씨)|구조]], [[이치조]], [[고노에]] 등의 [[고셋케]] 가문들이 이러한 경우이다.], [[가마쿠라 막부]] 개창 이후 무사들이 이에 영향을 받아 분봉받은 [[본관|본관지]](本貫地)의 이름을 붙여 사용하게 되었다. 이는 [[본관]] 문서의 일본 단락에도 설명되어 있다. 무가들의 본관지를 나타내면서 많이 퍼졌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가마쿠라 막부]] 초기에는 각지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 절대 다수였다. 예컨대 마쓰바라(松原)씨는 본관지인 하리마노쿠니 마쓰바라장(播磨国松原荘 : 현재의 효고현 히메지-아리마 일대)을 뜻하는 것이며, 닛타(新田)씨는 본관지 코즈케노쿠니 닛타군 닛타장(上野国新田郡新田荘 : 현재의 군마현 오오타시 닛타 일대)을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본관지 지명에서 따오는 특성 상 지명이 같은 경우 성씨가 다발적으로 생겨난다. 예컨대 이시카와(石川)라는 지명은 일본 전국에 매우 흔하게 있는 지명이어서, 여러 각지에서 이시카와라는 묘지가 생겼고, 심지어 현재까지도 이를 성씨로 새로 개창하는 경우가 많다. 이 뿐만 아니라 본관지 일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본관의 지명을 묘지로 삼으면 타가와 자가의 구별이 어려워진다. 묘지 이전의 [[우지(성씨)|우지]](본성)가 대부분 [[겐페이토키츠]] 뿐이라 구분이 어려웠던 문제가 그대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점차 자기 집안의 지형과 풍경을 묘지로 나타내는 경우가 생겨났다. [[야마모토]](山本)·[[야마다]](山田)·[[이케다]](池田)·[[타니구치]](谷口)·[[다나카]](田中) 등이 이러한 지형과 풍경에서 따온 묘지이다. 지형 유래와 비슷한 이유로 방위에서 유래한 성씨도 점차 생겨났다. 말 그대로 동서남북(東·西·南·北), 상중하(上·中·下), 전후(前·後) 등에서 따온 것으로 [[니시무라]](西村), [[나카무라]](中村)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형과 방위는 전국 각지에서 대체로 비슷한 경우가 많아 이렇게 생겨난 묘지는 지역 내에서는 구분이 쉽지만 혈통의 식별은 어려운 경우가 많다. [[https://office-morioka.com/myoji/shurui2.html|출처]] 덧붙여 [[메이지 유신]] 당시 묘자필칭령, 즉 모든 사람이 묘지를 가지도록 하여 성씨가 없던 평민들이 묘지를 창씨할 때에도 역시 이러한 지형, 방위에서 이름을 딴 경우가 매우 많았다. 뿐만 아니라 [[에도 시대]]까지는 모든 직업이 기본적으로 세습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직업으로 집안을 구분하고자 직업 혹은 가게 이름에서 묘지를 따서 붙이는 경우도 생겨났다. 고대에 개나 새를 기르던 이누카이(犬養)·토리카이(鳥飼), 조정의 장부를 관리한 오쿠라(大蔵) 등이 있고, 기본적으로 "~야(屋)"로 끝나는 성씨는 대부분 가게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대표적으로 에치고야(越後屋), 카가야(加賀谷) 등이 있는데, 아무래도 성씨에 가게라는 글자가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 껄끄러운 경우 가게를 뜻하는 야(屋)를 발음이 같은 야(谷)로 대체하거나,[* 가령 소메야(そめや)는 염색집(染(め)屋)을 뜻하는데, 오늘날에도 한자를 바꾼 染谷로 이어진다. 다만 '谷'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소메야' 혹은 '소메타니'로 나뉜다. 비슷하게 셋집/본채/본가(大家)를 가리키는 오오야(おおや) 역시 한자를 바꾼 大谷으로 이어지며, 읽는 법도 비슷하게 '오오야' 혹은 '오오타니'로 나뉜다.] 아예 빼 버린(越後) 경우도 있다. 이 이외에도 주군으로부터 하사받아서 이어진 묘지가 있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죽을 끓여주어 받은 오가이(小粥) 등이 있고, 에도 시대부터는 설탕을 헌상하면 사토(砂糖) 묘지를 받고, 도미를 헌상하면 타이(鯛) 묘지를 받는 식으로 묘지가 생겨난 경우도 있다. [[https://office-morioka.com/myoji/shurui2.html|출처]] 이후 [[에도 시대]]가 되면서, 묘지는 신분을 나타내는 데에 쓰이게 된다. 이에 따라 [[1801년]]에는 묘자대도의 금령(苗字帯刀の禁令)이 나오게 되는데, 묘자의 여부 자체가 신분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에, [[무사]] 등의 특권 계급이나 일부 서민(庄屋·名主 등 마을을 대표하는 수장)를 제외하고 성씨를 공식적으로 자칭하는 것 할 수 없게 만들어 통제하였다. 이러하여 이 시기에 묘지의 개수는 약 1만 개 정도로 통제되었다. 물론 이 시기에도 묘지의 사용은 갈 수록 늘어 갔는데, 무사 계급이 귀농한 경우도 있었고, 공식적으로 자칭하는 것이 안 된다 뿐이지 묘지를 가지는 것 자체가 금지된 것이 아니라 알음알음 몰래 묘지를 만들어 갔다고 한다. [[https://ka-ju.co.jp/column/myoji|출처]] 현대의 [[겐페이토키츠]] 성씨는 본성을 제하고 메이지 유신 무렵에 평민도 성씨를 가지게 될 때 자기가 살던 지역이나 직장이 켄페이토키츠 가문과 관련된 사람들이 해당 성씨를 선택해서 붙게 된 경우라고 한다.-- 겐페이토키츠가 겐페이토키츠가 아니야--[* 드물게 막부의 특별허가를 받아 성씨를 가지게 된 평민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에도 막부]] 시기에는 평민이 별칭으로 쓰던 묘자도 금지하였으나, [[메이지 유신]] 시기인 1875년부터는 [[https://ja.wikipedia.org/wiki/%E5%B9%B3%E6%B0%91%E8%8B%97%E5%AD%97%E5%BF%85%E7%A7%B0%E7%BE%A9%E5%8B%99%E4%BB%A4|평민묘자필칭령(平民苗字必称令)]]을 통해 농민들도 성씨를 갖게 되었다. 때문에 일본 성씨는 대개 유래가 지명, 직업명, 가게의 호칭 등에서 유래한다. [[메이지 유신]] 시기인 [[1870년]]에는 평민묘자허용령(平民苗字許容令)으로 평민들이 묘자를 갖는 것을 장려하였고, 그럼에도 평민들 사이에서 성씨의 사용이 더디자 [[1875년]]에는 아예 평민묘자필칭령(平民苗字必称令)으로 모두가 묘자를 갖도록 강제하였다.[* 물론 이 과정이 단번에 이뤄진 것은 아니며, 1871년 호적법(戸籍法)으로 한 가정은 같은 묘자를 이용하게 한 후, 1871년 성시불칭령(姓尸不称令)으로 [[우지(성씨)|우지]], 가바네 등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그 다음 1872년에는 복명금지령(複名禁止令)으로 본명이나 통칭([[자(이름)|字(아자나)]]와 같은 격식을 갖춘 이름)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게 하였고, 마지막으로 1872년에 개명금지령(改名禁止令)으로 한 번 등록된 성씨를 바꿀 수 없게 하였다.] 단 어떤 성씨를 가질지는 본인의 자유였으므로, 이 시기 매우 자유로운 형식의 성씨들이 등장한다. 대부분은 본관지나 조상 대대로 살던 땅의 이름을 붙였고, 지형, 방위, 가게 이름 등 위에 나타난 대로 다양하게 지었다. 이미 묘자가 있던 경우 그대로 썼고, 묘자대도의 금령으로 공식적으로 못 쓰고 몰래 써오던 성씨가 있는 경우 이를 칭하기도 하였다. 특히 평민 중 까막눈이거나 본관 지명 등에 어두운 경우가 많아 대다수가 촌장[* 庄屋·名主 등 마을 수장]이나 절 등을 찾아가 집 근처의 지형에 따라 성씨를 붙이기도 하였다. [[먼나라 이웃나라]] 등에서도 소개 된 익히 알려진 일본 평민들의 성씨 작명 과정이 바로 이것이다. 이 외에도 성씨가 뭔지도 모르고 지어야 했던 경우가 많아, 매우 독특한 성씨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예컨대 특이한 일부 사례를 열거하면 적당히 아무 거나 지어달라고 하여 적등(適藤), 왼쪽 사람이랑 같은 걸로 지어달라고 하여 좌동(左同), 일본에서 최고의 성씨를 가지고 싶다고 하여 폐하(陛下)(...)로 지으려다 촌장의 만류로 지은 폐상(陛上)[* 현재는 계상(階上) 성씨를 쓴다고 한다.] 등 매우 다양한 성씨들이 등장하였다. 이에 따라서 이 이전 [[에도 시대]]에는 1만여 개 ~ 3만여 개 정도이던 일본의 묘자는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12만여 개'''까지 많아진다. 즉 대략 '''10만여 개'''가 이 시기에 새로이 등장한 성씨인 것이다. [[https://ja.wikipedia.org/wiki/%E5%B9%B3%E6%B0%91%E8%8B%97%E5%AD%97%E5%BF%85%E7%A7%B0%E7%BE%A9%E5%8B%99%E4%BB%A4|출처]] [[천황]]을 포함한 황족은 지금도 '''성씨가 없다'''. 성씨는 [[인간]]들이나 가지는 건데 [[일본 신화]] 구조상 천황은 '보통 인간'이 아니고 신의 혈통에서 직계로 내려왔다는 이유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고 [[쇼와 덴노]]가 [[인간선언]]을 했지만, 그래도 성이 없는 상태는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 대신 성 비슷하게 쓰는 칭호로 천황 일가는 내정(内廷)으로, 그 외 황족은 [[미야케]]라 하여 '미야(宮)'의 호칭으로 불린다(다른 일가인 [[후미히토|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노리히토|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 등). 성씨의 길이는 대체로 한자 2글자로 되어 있는 경우[* [[마츠다이라]](松平), [[시마즈]](島津), [[호소카와]](細川), [[롯카쿠]](六角), [[키타바타케]](北畠), [[아시카가]](足利), [[나가오]](長尾), [[우에스기]](上杉), [[다테]](伊達), [[닛타]](新田), [[치바(성씨)|치바]](千葉), [[호조(성씨)|호조]](北条), [[미우라]](三浦), [[소마]](相馬) 등 7만여 종 이상]가 많으며, 그 다음에 한자 3글자[* [[사사키]](佐々木), [[오가사와라]](小笠原), 오쿠보(大久保) 등 2만여 종 이상], 1글자[* [[타치바나]](橘), [[미나모토]](源), [[모리]](森), [[하야시]](林), [[하라]](原), [[야마토]](倭), [[오카]](岡), [[소]](宗) 등 2천여 종 이상], '''4글자'''[* [[테시가와라]](勅使河原), [[초소카베]](長宗我部), 무샤노코지(武者小路: 무샤노코지 사네아츠라는 소설가가 있으며, [[무샤노코지 시엔]]이라는 캐릭터도 이 성씨이다.) 등 4백여 종 안팎]도 있고, 심지어 '''5글자'''[* 카데노코지(勘解由小路)와 사에몬사부로(左衛門三郎)가 현존하는 '''2개뿐인''' 5자짜리 성씨들이며, 각각 1가구밖에 없다. 이전에는 이 성씨들과 함께 오오기마치산조(正親町三条)라는 성씨도 존재하였으나, 1871년에 오오기마치산조를 [[사가]](嵯峨)로 바꾸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사에몬사부로는 행정직원이 실수로 이름까지 한꺼번에 성으로 등록한 것 같은데-- 그리고 카데노코지(자작), 사가(후작)는 구 [[화족]]가문이다. [[사가 히로]]도 사가씨 일족이다. 한편 [[https://ja.wikipedia.org/wiki/%E5%8B%98%E8%A7%A3%E7%94%B1%E5%B0%8F%E8%B7%AF%E8%B3%87%E6%B7%B3|카데노코지 스케아츠(勘解由小路 資淳)]] 전 자작은 지금도 살아있다! (1922년생)]까지 순서대로 존재한다. 또한 한자 외에도 [[히라가나]]나 [[가타카나]]가 포함되거나[* [[와타리]](渡り), 소리메(反り目), [[이치노세]](一ノ瀬), 미츠기(三ツ木) 등] 심지어 한자도 가나도 아닌(!) [[〆]](시메) 같은 기호가 사용된 성씨도 존재한다. 단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〆를 일본에서 만들어진 국자, 즉 [[https://ja.wikipedia.org/wiki/%E3%80%86|한자로 다룬다.]][* 예로 [[인피니트 스트라토스]]에 출연했던 성우 [[시메노 준코]]([[http://ja.wikipedia.org/wiki/%E3%80%86%E9%87%8E%E6%BD%A4%E5%AD%90|〆野 潤子]])가 있다.] 연호에서 따오거나 한자가 같은 성씨도 있다. 대표적으로 [[메이지]](明治)는 300명정도 존재한다. [[다이쇼]]라는 성씨도 90명 정도 있으나 연호랑은 무관하고 단순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쇼와]]라는 성씨는 30명 정도 존재하는데. 본성이 코스게(小菅)인 유력가가 1932년 개성하여 생겼다. 한편 완전 한국 성 같아 보이지만 도래인이 아닌 성씨도 드물게 존재한다. 한 예로 금(金)이라고 쓰고, 발음을 음독해서 "긴" 또는 "곤", 훈독하여 "가네", "고가네" 등으로 읽는 성씨가 있는데,--김씨-- 이들은 [[재일 조선인]]과 무관계한 일본인이다. 대표적인 유래로는 [[겐페이 전쟁]] 시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수하에서 금광을 맡은 직인 집단이 있다. 또한 한반도 고대국가명을 딴 성씨도 있다. [[고마]]([[고려|高麗]])씨, [[구다라]]([[백제|百済]])씨, [[시라기]]([[신라|新羅]])씨, [[가라]]([[가라#s-4|加羅]])씨 등이 그들. 이들 중 가장 번성한 고마씨는 일본으로 망명한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인 [[약광]]을 후손으로 하는 망명 고구려인의 후손임을 [[역사스페셜]]에서 밝힌 바[* 중세까지는 고구려인들끼리만 혼인했다고 한다.] 있으며, 본 프로에 따르면 그들은 스스로를 일본인이라 생각하지만 고구려의 후손임도 의식하는 모양. 나머지 성씨들은 언론에서 주목받은 바는 없지만, 일본으로 망명한 해당 국가 출신들이 선조이지 않을까 추측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